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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 존 마에다 총장 인터뷰

jisunlee 2009. 12. 15. 08:03

"기술은 똑같아져… 미래는 결국 예술적 독창성에서 판가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 존 마에다 총장
경영 석학들 줄줄 꿰는 디자인 거장

그와의 인터뷰는 마치 'Weekly BIZ 포럼' 같았다. 디자인 거장(巨匠) 존 마에다(Maeda·사진)의 입에서는 말콤 글래드웰(Gladwell), 댄 애리얼리(Ariely), 다니엘 핑크(Pink) 등 그동안 Weekly BIZ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던 쟁쟁한 젊은 석학들의 이름이 차례로 쏟아져 나왔다.

그는 먼저 "말콤 글래드웰이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말하는 '1만 시간의 훈련'을 거친 후 또다른 저서 〈블링크〉의 순간적 직관 능력이 생길 때, 비로소 내가 말하는 '단순화'도 가능해진다"고 진단했다.

〈상식 밖의 경제학〉을 쓴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와는 "친한 친구"라는 그는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 갔다 돌아온 애리얼리 교수가 심리학과 경영학을 두루 공부한 이후 경험과 학문의 '잡종 교배'를 통해 행동경제학의 탁월한 새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감성의 '우뇌(右腦) 시대'가 열린다"는 소장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예언은, "예술가적 창조성이 21세기 승부의 최대 관건"이라는 자신의 분석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는 게 그의 평가였다.
 

"카메라는 깜찍하게 작은데, 종이로 된 설명서가 훨씬 더 무겁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일이라고 보는 사람."

"독창성과 예술성의 잡종 교배야말로, 기술 수준이 평평해진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무기라고 믿는 사람."

흰색 라운드 티에 남색 캐주얼 재킷을 걸친 그는 "스스로를 간단히 규정해보라"는 질문에, 유난히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이런 표현을 내놓았다.

미국 최고의 미술대학으로 꼽히는 RISD(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의 존 마에다(Maeda·43) 총장은 '기술의 혁명적 발전'이라는 현 상황을 분석의 공통분모로 깔고 있었다.

"기술 발전이 '과도한 복잡함'으로 도지면서 정작 인간이 압도당하게 됐으므로 '단순함'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게 전자(前者)에 대한 보충 해설이다. "기술 발전이 광범위하게 공유(共有)되는 현 상황에서는 예술가나 디자이너의 도발적, 격정적 독창성을 혼합시켜야 비로소 탁월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게 후자(後者)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MIT 미디어랩 교수를 지낸 마에다 총장은 한국에서 〈단순함의 법칙(The Law of Simplicity·럭스미디어)〉이란 책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 그는 MIT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석사를, 일본 쓰쿠바 대학에서 디자인 전공으로 박사를 땄다.

132년 전통의 RISD 총장으로 작년 10월에 영입되기 전부터 마에다는 이미 세계적 디지털 컨설턴트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컴퓨터 과학자로 유명했다. '에스콰이어'지(誌)는 그를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21명'으로 꼽기도 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존 마에다 RISD 총장이 손가락을 머리에 대면서“우뇌의 감성이나 예술가적 독창성 같은 강력한 무기를 제대로 장착하느냐 여부가‘포스트 디지털 르네상스’시대의 중요한 승부처”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창조성과 독창성, 예술성,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당신이 말하는 '단순함'이란?

"내가 단순함의 미덕에 주목한 건 4~5년 전쯤이다. MIT에서 공부하고 교수를 하면서 그 많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던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너 저거 다 사용할 수 있니?' 내 대답은 '노'였다. '넌 MIT의 최고 전문가잖아?' '그래도 몰라. 나도 컴퓨터 고장 나서 파일을 날린 적이 있어.' '아니 너도 그래?'

깜짝 놀라는 친구를 보며 나는 새삼 느꼈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진보한 기술이 모든 인간에게 힘들고 고된 '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단순함이 왜 중요한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사람이 진보시킨 기술이 오히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설(逆說)이 어디서 왔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왜냐? '단순함의 상실'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단순함의 미덕을 이야기했다. 오늘날 구글·필립스와 통신회사 등 수많은 일류 기업들이 단순함의 기준을 고민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란 게 있다. 마이크로칩의 밀도는 약 1년 반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비행기가 힘차게 이륙하는데 사람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잠깐만, 거기 서 있어' 하며 매달리는 형국이다. 이런 일은 곳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세계적 경제 위기도 금융 공학의 '과도한 복잡함'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인가?

"음…. 금융과 경제의 정보량이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해진 것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스피드'였다. 수십억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동하는 일은 예전에는 있을 수 없었다. 금융 공학과 기술 발전으로 요사이는 그런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금융이 전개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인간이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고통이 일정 시간 지속되면 확실히 느끼지만, '아' 하는 한순간에 끝나면 얼마나 아픈지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거대한 양과 빛의 속도가 오늘날 우리의 세계를 지배하고 경영하지만, 인간은 감(感)을 잡고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단순함'을 통해 인간의 눈높이로 기술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럼 이런 시대에 '단순함'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 대목에서 그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기자의 질문지 종이를 가져가더니 뒷면을 펴고는 X축과 Y축을 그리며 설명을 이어갔다(그래픽 참조).

"Y축을 디지털 기술이라고 하고, X축을 창조성·예술·디자인이라고 하자. 20년 전에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컴퓨터도 관련 기술도 없고 창조성도 없었다. 즉 기업은 ①의 영역에 있었다. ②영역에는 유수한 예술·디자인 스쿨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컴퓨터나 기술은 없었다. 좋은 컴퓨터는 다 학계에 있었다. ③의 영역에 MIT가 있었다.

2000년 즈음까지만 해도 MIT 미디어랩은 세계 최고의 컴퓨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MIT의 우월한 경쟁력이었다. 기업에 '이거 봐, 우리는 너희보다 컴퓨터가 많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1년쯤에 변화가 시작됐다. ①·②와 ③·④ 사이를 막고 있던 장벽이 기술의 혁명적 발전 덕분에, 베를린 장벽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기업들이 MIT보다 더 많은 컴퓨터를 갖게 된 것이다. 심지어 신입생들도 이제 미디어랩의 컴퓨터보다 스크린도 더 선명하고 더 빠른 컴퓨터를 갖고 있다(웃음). 이러자 태생적으로 민첩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창조적 혁신을 논하기 시작했다. 즉 ④번으로 가는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P&G가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게 좋은 예이다. 비슷한 시기에 예술과 디자인 스쿨들도 우수한 성능의 컴퓨터를 작업에 도입하게 됐다. ②에서 ④로 움직인 것이다. 학계도 늦게나마 ④로의 이동을 모색했다."

―④의 영역이 새 시대의 새 공간이 된 것인가?

"정확히 그렇다. 나는 ④의 영역을 '포스트 디지털 르네상스(Post Digital Renaissance)'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가 말하듯, 정보 기술의 괴리가 줄고 기술 수준이 평평해지면서 창조성과 예술성으로 승부처가 옮겨오는 이 시대는 문예의 부흥, 곧 '르네상스'라는 표현에 가장 적절하게 담기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필립스·구글· 샤넬·까르띠에나 북미에서의 삼성 등 수많은 다양한 기업들의 컨설팅을 해주었던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④번 영역으로 빨리 이동하라'는 신호를 적절하게 보내줄 수 있었다. 더구나 창조성에 관해 전설적인 이 RISD의 총장이 된 것은 나에게 더 좋은 환경이 됐다."

―당신이 강조하는 창조성,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도발적 독창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많은 기업들이 그저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고, 고무공을 주물럭거리고, 카펫을 깔면 창조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절대 그런 게 아니다. 창조성의 지식 기반도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그것도 연습과 훈련이다. 나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고(思考)하는지, 창조적인 디자인·예술 스쿨이 어떻게 훈련하는지를 기업들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비즈니스에 꼭 도입해야 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그게 무엇인가?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은 훈련 과정에서 동료로부터의 비평을 즐겨 듣는다. 또 스스로 끊임없이 '왜?' '왜?'를 묻는다. 그에 따라 매 순간 스스로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변신(變身)에 완전히 열려 있는 것이다.

예술의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예술은 어떤 특정 주제에 관해 극단적으로 몰입하고 이해한 후, 또 그걸 그런 몰입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예술가는 연필·그림·진흙·나무든 혹은 컴퓨터든 필요한 수단을 사용하고 경험과 열정을 쏟아 부어 그걸 표현한다. 반면, 과학과 기술은 논리와 규칙에 근거해 '흑백'으로 갈라져, 단 하나의 정답만을 가르치려 한다. 예술은 다양한 톤의 '회색' 전망과 해석에 마음을 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극단적으로 복잡한 세계, 카오스(chaos)에 살고 있으므로, 사회의 '회색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게 우리가 예술가적 기질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는 이어 '권위적 리더십'과 대비되는 '창조적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권위적 리더십'은 "채찍 중시, 위계질서 중시, 단선적, '예스 혹은 노'의 명쾌함 중시, 옳은 판단인지 따지기, 장군(將軍)처럼 생각하기, 실수 회피, 제한된 피드백만의 허용"으로 대표된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창조적 리더십'은 "당근 중시, 네트워크 중시, 다층적, '아마도(maybe)'와 같은 모호함 인정, 현실적 판단인지 따지기, 예술가처럼 생각하기, 실수로부터의 학습 환영, 무제한적 비판 허용" 등으로 상징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창조성과 예술가적 기질만 중요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이런 창조적이고 예술가적 사고방식이 매우 강력한 무기이며, 이런 '신무기'를 잡종 교배시켜야만 포스트 디지털 르네상스 시대에는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타임(TIME)지 4월 20일자에 실린 비즈니스 기사에서 최근 위기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5명의 인터넷 기반 사업가들이 소개됐는데, 그중에 2명이 RISD 출신이었다. 아주 유명한 지적 재산권 변호사 중에도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있다."

―Weekly BIZ가 잘 쓰는 표현인데, 이런 '무기의 장착'이 중요한 것인가?

"정확한 표현이다(웃음). 예술가적 기질과 독창성을 장착하고 나서 당신은 더 뛰어난 변호사, 더 뛰어난 기업 CEO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경제, 카오스의 경제는 창조적 리더를 원하고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한국은 세계에서 최고급의 정보 기술 환경과 최고급의 사용자들이 넘쳐나는 엄청난 곳이다. 그걸 의외로 한국인들이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한국의 검색 엔진 '네이버' 가 매우 좋은 사례이다. 네이버는 늘 야후에 앞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은 아무도 네이버를 모르니, 야후는 네이버를 따라 한다(웃음). 이렇듯 한국에는 최첨단 디지털 환경과 열정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인식하고 개발해야 한다. 또 하나. 나는 인생에서 수많은 멘토(mentor)가 있었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고 영감을 받은 멘토들은 '그건 내가 잘 모르겠는데, 너는 아니?' 라고 내게 되묻는 현인(賢人)들이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데에서 진정한 지혜와 독창성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