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 Ji Sun Lee/뉴스/기사

숙명여자대학교 이지선 교수 '내 인생의 컴퓨터'

jisunlee 2017. 9. 27. 09:20

 

http://www.thisisgame.com/webzine/series/nboard/212/?n=75924

 

숙명여자대학교 이지선 교수 '내 인생의 컴퓨터'
넥슨컴퓨터박물관 | “컴퓨터는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
인터뷰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

Q: 인생 최초의 컴퓨터?
A: 제가 처음 쓴 컴퓨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는 마그네틱으로 쓰는 컴퓨터였어요. 컴퓨터를 너무 배우고 싶어서 엄마한테 부탁해서 과외를 했어요. 그랬더니 옆 마을의 전산학과 언니를 섭외를 해주셨어요.
그때 10 쓰고 뭐 쓰고 20 쓰고 뭐 쓰고 하는 베이직 랭귀지를 처음 배웠어요. 그걸 가지고 도트프린트 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그런 거에 집착 잘해요. (웃음) 도트 프린터로 다다닥 소리 나면서 찍히는 그때의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 양 옆에 보면 펀치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을 떼어내고 완성 작품을 받을 때의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도트를 그리는 프로그래밍을 많이 했어요. 또 그때 게임을 많이 했는데, 포탄이 적진에 떨어지는 그런 프로그래밍을 초등학생 때 많이 했고 그게 저의 첫 번째 프로그래밍 경험이자 컴퓨터 경험이에요.

Q. 컴퓨터가 자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A: 우선은 어렸을 때 컴퓨터를 조금 해봤던 기억 때문에 약간 얼리어답터 적인 성향이 강했어요. 그리고 저는 책을 많이 읽는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때 제3의 물결을 중학교 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은 아빠 서재에 꽂혀있었던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기 일 년 전에 제가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었었거든요.
그런데 그 두 책이 되게 상충하는 내용이라서 그 관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제3의 물결을 보면 원격으로 일한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게 제가 어렸을 때, 80년대만 해도 '이게 가능할까?', '이런 시대가 온다' 하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되게 즐거운 일이었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그러고 나서 대학교 때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어요. 제가 우수 아르바이트 학생이었기 때문에 (웃음) 일본에 국제 북 페어에 같이 가게 돼요. 치바에서 열리는 엑스포에 갔는데 그때 처음 사이버 펑크 문화를 접하게 됐어요. 90년대 초반에 사이버 펑크에 대해서 '어 이런 문화가 있다니' 하고 몬도2000 잡지를 사게 돼요. 
몬도2000을 사고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읽고 그 세계로 미친 듯이 빠져들었어요. 그걸 가지고 도전을 하는데 저희 교수님들이 ‘저 아이는 왜 저럴까?’ 하시며 엄청 싫어하셨어요. 사이버 펑크를 주제로 미래가 어떤 식으로 될지 저만의 비주얼로 풀어낸 작업이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유해 드릴게요. (아래 사진)
거기에는 '젠더가 없다', ‘젠더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런 것도 있었고, 기술 낙관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컴퓨터들이 몸속 안쪽으로 들어온다’라는 테마도 있었어요. 몇 가지 테마를 잡아서 작업했었는데 교수님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근데 재미있었던 건 그때는 되게 악평을 받았었는데, 제가 석사를 한 파슨스에서는 엄청나게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대학교 때 애플 매킨토시 클래식 II가 있었어요. 네모난 형태의 일체형이었는데, 아무도 그 컴퓨터를 안 쓰는 거예요. 저희 과에 딱 한 대 있었는데. 그래서 제가 그걸 붙잡고 썼죠. '퓨쳐리즘(Future-ism)'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고, 그 동아리 활동으로 나중에 제 후배들이 전자업계로 많이 갔죠. 
그때 저한테 가장 기념비적인 컴퓨터는 센트리스650 Apple Macintosh Centris 650(1993)이라고 피자 박스처럼 생긴 맥인데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거금을 주고 직접 샀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큰돈을 쓴 첫 번째 물건이었고 그것을 너무 사랑해서 항상 부를 때 '너는' 이렇게 부르면서 사람처럼 대했고, X자 뜨고 잘 안 돌아가면 같이 슬퍼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야기'라고 하는 매킨토시 통신을 하면서 하이텔이나 이런 쪽을 많이 하면서 남성만 있던 통신세계에 여성으로서 발을 디뎠어요. 또 종로에 맥 센터가 있었어요. 거기서 주로 정보를 얻었고 사람들을 만나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가장 결정적으로 컴퓨터가 저한테 큰 영향을 줬던 건 모자이크(Mosaic)* 쓸 때였거든요. 모자이크라고 하는 브라우저를 이용해서 넷스케이프하고 모자이크를 번갈아 가면서 썼었는데, 전 세계에 있는 엔지니어들의 홈페이지가 가끔 뜰 때였어요.
그때 제가 어디 웹사이트에 질문을 몇 가지 올렸는데 전 세계에 있는 남자 엔지니어들이 엄청나게 메일을 많이 줘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아시아에 (이런 작업을 하는) 여자애가 있단 말이야?’ 하면서요. 암로뱅크라고 유럽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인데 화질이 안 좋긴 했지만, 네덜란드 사진을 매일 찍어서 보내줬던 친구도 있고, 남극 세종기지 조리사분이 사진을 찍어서 보낸 기억도 있고.. 재미있는 경험이 많았어요.
'전 세계가 이렇게 하나로 연결되는구나!' 그게 컴퓨터가 저한테 준 가장 큰 영향 중 하나였고 이후 네크로폰테의 비잉 디지털을 읽고 저는 이 세계로, 프로그래머의 세계로 들어왔죠​.

Q. 컴퓨터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저는 컴퓨터는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컴퓨터는 계속 변하고 있고, 모양도 변하고 있고, 정의도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어떤 문의 역할, 게이트의 역할을 지금까지 해왔다고 생각을 하고요.
항상 컴퓨터라는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제가 뭔가 스스로 상상을 하거든요. 그러면 그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제가 상상했던 것들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줬던 것이 컴퓨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재미있었던 것은, 뭔가 생각보다 친절한 것들이 항상 존재해있었어요. 그게 아마 컴퓨터를 만든 사람들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세계였기 때문에 그 문을 열 때마다 그것에 대한 기대감, 열망, 기쁨 같은 것들이 항상 존재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Q.​ 최근 가장 주목하는 신기술은?
현재 가장 주목하는 기술은 오픈소스와 오픈소스 하드웨어 쪽이고요. 과거와 비교하여 현재 가장 다른 프레임은 (하드웨어가) 과거에는 누군가 주도해서 그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였다고 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은 다양성이 폭발하고 있는 시대고, 그 다양성으로 인해서 정말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세계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보는 것이 굉장한 즐거움 중의 하나에요. 자고 일어나면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고 있고, 그런 것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런 것들이 컴퓨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과거에는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서 잘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관점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컴퓨터는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의 일부분이 되었고 그 일부분이 마침내 컴퓨터를 통해 나와 남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었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컴퓨터 자체가 이제는 온전히 우리의 일부가 되었고, 앞으로 그런 것들이 차지해가는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에 과거처럼 컴퓨터를 사물로 봤던 관점이 아니라 이제는 인격체로써 동반자적인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로봇이라든가 인공지능까지 포함해서 실제 컴퓨터에 대한 많은 논의가 ‘컴퓨터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 등 인격적인 부분, 윤리적인 부분, 미래지향적인 부분까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게임산업도 마찬가지고.
예전에 단순하게 (컴퓨터라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보다 상위로 올라오는 개념이 되지 않았나,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관점으로 컴퓨터를 바라보고, 같이 공생하고,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교육자로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조기 코딩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실 코딩 교육은, '코딩을 한다'는 과정은 툴을 쓰는 것과 똑같거든요. 연필을 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을 하시면 돼요.
근데 좀 잘못 생각하시는 게, 얼마 전에 제가 모 포럼에 갔다가 들은 얘기인데요. 어떤 어머니가 "스크래치(Scratch, 프리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 뗐으니 그다음에 무엇을 배우면 될까요?"라고 질문을 하셨대요. 근데 스크래치는 다 뗄 수 없거든요. 연필을 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그냥 도구일 뿐이고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연필을 사용해서 우리는 책을 쓰기도 하고, 영화의 대본을 작성하기도 하고, 또 그걸 가지고 멋진 공연을 만들기도 하고, 웹툰 같은 걸 그려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코딩을 하고 그 툴을 어떻게 쓸 건 지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지만 개인들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느냐에 대해서 우리가 같이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딩 교육 자체의 방향은 툴 교육의 관점이 되어야 하고 코딩 자체에 대한 잘못된 믿음들은 좀 다른 방향에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은 좋은 책이 나오거나 좋은 희곡이 나오려면 연필을 잡아서 그것들을 썼을 때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코딩을 했을 때 코딩을 공부처럼, 학원 숙제처럼 접근하면 결코 즐거운 작업이 나올 수 없어요. ‘코딩은 툴 교육이다, 연필이다’라고 생각을 하셔야 해요.
우리가 연필을 잡고 맨 처음에 자기 이름을 써보고 불러보면서 의미를 부여하듯 코딩 자체로 자기가 창작하는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창작 활동을 지속시켜서 그런 툴들을 잘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추세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코딩교육이 정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내 인생의 게임을 하나 고른다면?
어렸을 때 저희 집이 오락실에 월세를 준 적이 있어요. 주인집 애가 오락실에 가서 무한정 게임을 하던 약간 눈치가 없는 아이였죠. 제 인생의 게임 중의 하나, 가장 집착했던 게임 중의 하나는 <1942>였어요. (1942를) 미친 듯이 이렇게 이렇게 긁으면서 했던 사람 중의 하나고, <버블보블>도 그랬죠.​
제가 엔딩을 본 게임 중 제일 재미있었던 건 <마성전설>? 그건 오락실에서 하진 않았고, 남동생이랑 같이 끝까지 밤을 새워서 깨본 적이 있죠. 아, 최근에 재미있던 건 <모뉴먼트 밸리>. 워낙 예뻐서. 근데 하루면, 아니 몇 시간이면 다 깨서...
딸한테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돈을 내서 이기는 게임은 좋은 게임이 아니라고 말해주거든요. 중간중간에 뭔가 이기고 싶어서 돈을 내야 하는 케이스들이 있어요. 저희 딸 같은 경우도 맨 처음에 잘 모르니까 돈을 확 지급해서 저희가 깜짝 놀란 적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유저가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서 그 안에 정말 본인 스스로가 융화되어, 캐릭터가 되어서 그 모험들을 헤쳐나가고, 결국에는 그 모험의 정점에 다다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건물을 아주 단순하게 100층 정도 짓는 게임을 한 적이 있어요. 대학생 때 일주일 내내 그걸 잡고 있었어요. 매킨토시 게임인데, 그게 저한테는 되게 재미있었는데 맨 마지막에 100층을 짓고 났더니 위에서 성당이 지어지면서 결혼식을 하면서 끝나더라고요. 왠지 모르게 웃겼어요.
근데 그게 되게 재밌었거든요. 결코, 단순한 게임이 나쁜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쁨이나 재미는 본인이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관점에서 단순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야기가 있거나 이야기가 없거나 상관없이 성취나 몰입을 느낄 수 있다면 저는 충분히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하고 싶은 말은?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정말 대단한 박물관인 것 같아요.
우선 저도 이렇게 다양한 컴퓨터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은 했거든요. 누군가는 옛날 컴퓨터를 모아놓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일을 시작해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우리나라의 IT업계 아카이빙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카이빙이 중요하다고 얘기는 하지만 그 일을 선뜻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거든요. 그런 아카이빙 일에 도전하신 것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어려움이 되게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나라처럼 기부하는 문화가 활성화되어있지 않고, 아카이빙하는 것에 대해 투자가 미비한 환경에서 이런 일들을 시작하고, 그걸 또 재해석해서 전시로 큐레이션 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거든요.
아카이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아카이빙 자체를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일은 또 새로운 창작의 영역에서의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아름다운 도전에 성공하셨기 때문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서 넥슨컴퓨터박물관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단순히 게임을 게임으로만 보지 않고, 게임과 하드웨어를 같이 보는 관점도 저는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하고요. 이런 것들이 나중에 우리나라의 IT 산업과 역사에 중요한 자료이자 보고로 쓰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