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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은 쇠퇴기의 산업임을 잊지 말자!”

jisunlee 2015. 5. 27. 12:18

http://bookedit.tistory.com/m/post/307

“출판은 쇠퇴기의 산업임을 잊지 말자!”


편집자에서 출발해 민음사 대표 편집인을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에게 출판 산업 위기의 본질, 편집자의 길 등에 관해 들어 보았다.


* 말도 많은 지금 출판 위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그동안 문화 (운동) 차원에서 보는 출판을 보는 담론이 강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기본 구조를 서점에서도, 출판에서도 적용했다. 예전에는 ‘좋은 책’ 하면 누구에게나 통해서 심지어 상업적인 책을 만드는 편집자는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적 베이스를 간직하면서도 산업적 성숙을 함께 이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같은 게 있다. 출판을 산업으로 분석하려면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많은 출판사는 사장 내지는 한두 명 편집자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크다.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할 때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


* 출판 위기는 좋은 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인가?

현재 출판 산업의 문제는 편집자 개개인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출판계 구조의 문제이다. 전체 시장을 읽으려면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편집자를 십여 년 꾸준히 교육하면서 그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느냐, 이를 회사의 핵심문제로 생각하느냐? 편집력은 이제는 회사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지난 3년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신간 비율이 정확하게 68% 내외로 유지되었다. 편집자들이 독자들이 사랑하는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는 뜻이다. 콘텐츠 문제가 아니다. 출판산업 자체가 기울고 있다. 쇠퇴기 산업에서 기우는 속도를 늦추고, 그 안에서 신사업을 만들어서 전체를 끌어올리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도 ‘좋은 책’을 만들면 되겠다며 원론적인 생각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넘어서야 한다. 전자책도 출판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플랫폼 중 하나고, 강연 개발 등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 트랜스뷰는 2000년 이후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신생출판사 중 하나인데, 도매상 대신 1000여 군데 소매상과 직거래한다. 한 서점에서 책이 잘 나가면 영업자가 달려가 알아보고, 바로 나머지 직거래 소매상에 쫙 알린다. 독자랑 직접 맞닿은 작은 서점들에서 정보를 얻는 거다. 사실 출판사는 독자에 관해 잘 모른다. 그 간극을 대충 ‘감’으로 편집자가 메우고 있다. 이제 이를 극복할 때다.


* 전문화된 출판사가 별로 없다. 재편이 필요한 시기는 아닐까?

프랑스에서 출판사 1만 군데가 된 때가 1991년, 현재는 3586군데이다. 우리나라는 출판사 1만 군데가 된 때가 1993년, 지금은 5만 군데다. 프랑스는 3586군데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 6만 5000종인데, 한국의 5만 군데 출판사는 4만 7589종을 냈다. 그마저도 절반은 학습지, 참고서, 시리즈물 등이다. 출판사 수만 늘었지 종 다양성은 늘지 않았다. 가령, 천문학 책만 내는 출판사, 이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 출판사가 존재한다는 건 그걸 만드는 편집자도 먹고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편집자들은 단순히 책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학 세미나도 조직하고 해서 지식 산업의 최첨단에 서 있다. 미국 랜덤하우스 연 매출 3조는 그 아래 300개의 전문화된 출판사에서 편집자들이 책을 만들고 살아가면서 나온다. 


* 출판 주체(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의 양성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인력의 평균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SBI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본다. 그다음이 문제이다. 편집자가 10년차쯤 돼서 소진되어 재교육을 받아야 할 때 말이다. 시야가 넓어지는 교육, 즉 전략적 사고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출판 고도화를 못 하고 있다. 전략적 에디터, 전략적 마케터 등 고급인력 없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이런 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2차 교육 기관이 가장 시급하다. 그런데 여기에 투자하는 출판사는 거의 없다. 공유지 관리를 위한 기금이 필요한데, 출판계 자체에 여력이 없다. 공적 자금의 투여가 필요한 부분이다.


* 새로운 출판문화를 만드는 전략으로 든 ZINE이, 소규모 잡지가 계속 망하는 한국에서 가능할까?

일본의 출판 에너지는 당연히 ‘잡지’에서 나온다. 이미 1960년대에 잡지 혁명이 일어나 정보 가공술이 어마어마하게 발달했다.《브루터스(BRUTUS)》처럼 10명이 2주에 한 번씩 50만 부씩 찍는 잡지를 만드는 세상을 만들어 낸 거다. ‘샤넬’ 특집을 하면, 샤넬 향수에 들어간 식물을 추적해서 식물도감을 만든다. 올해 첫 호 특집은 독서 입문인데, 최근 독서 관련 책을 다 모아 읽고 분류하고, 저자들을 취재해 150페이지에 압축해 딱 보여 준다. 일본 농민회에서 만드는 《현대농업》이라는 잡지는 따로 영업자가 없다. 지역마다 편집자 겸 영업자가 있는데 이들은 대학교수가 아니라, 농작물을 기르는 농민과 대화한다. ‘기적의 사과’ 같은 게 이 잡지를 통해 알려졌다. 가령, 어느 농부가 3년 넘게 복숭아 씨알이 1.5배 굵게 나오면 기자가 찾아가 땅은 어떻게 만들고 퇴비는 어떻게 쓰는지 등 1년 내내 취재해서 세세히 기록해 소개한다. 그리고 또 그 잡지를 들고 복숭아 농가들을 찾아가 영업하고 다른 정보들을 얻는다. 이런 네트워크를 가진 잡지가 일본엔 수두룩하다. ZINE이 중요한 건, 이를 위한 고도의 편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홍대 쪽에 가서 독립잡지들을 정기적으로 훑는데, 너무 사진과 디자인 베이스이다.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독자를 끌어당기기는 어렵다. 《월간 잉여》 같은 잡지가 더 많아져야 한다. 한마디로 덕후가 많아야 하고, 덕후들에게 책 만드는 기술, 정보를 가공하는 기술이 더해져야 한다. 첨단 장비 가격이나 제작비는 갈수록 떨어지기에 ZINE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단행본은 서점이라는 진입 장벽이 높지만 잡지는 그보다 낮은 편이다. ZINE에서 에디터의 전문성을 높이면, 시장에서 한번 해 볼 만한 시도라 본다.


* ‘편집문화실험실’의 구체적인 비전은?

출판에 관한 담론을 만들고 싶다. 연구회를 만들어서 데이터나 전략, 객관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쌓아 나가고 싶다. 개별 출판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이제는 뭘 가지고 판매를 촉진할까? 이런 연구에 돈을 써야 하는데, 아직 한국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물론 ZINE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