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Study

Whole Earth Catalog 홀 어스 카탈로그

jisunlee 2014. 5. 27. 09:32

http://en.wikipedia.org/wiki/Whole_Earth_Catalog

 

스티브잡스가 35년전의 구글이라고 칭한 홀어스카달로그 Whole Earth Catalog

 

지난달 숨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히피 문화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만든 아이폰에도 이런 히피사상이 반영돼 있는데, 잡스가 성서처럼 여겼던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를 통해 잡스와 히피 사상에 대해 알아보자.

잡스는 1973년 그의 대학 친구인 대니얼 코트케와 인도를 여행했고 귀국할 당시에는 머리를 삭발한 채 인도 수도승의 복장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둘째 부인인 로렌 파월과의 결혼도 선 불교 승려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는 코분친노란 선승을 평생 멘토로 삼아 명상 수행도 즐겼다.

십년 가까이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만 고수했고 그의 집에는 "아인슈타인의 그림 한 점과 램프, 의자 하나와 침대 하나가 전부"(존 스컬리 전 펩시 회장)였다.

스티브 잡스가 창조한 아이폰에서도 히피 사상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잡스가 젊은 시절 즐겨 읽었던 히피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에서는 유명한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에 등장하는 "stay hungry,stay foolish (항상 배고파하고 항상 배워라)"라는 문구가 나와 있었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생태계 보존을 위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각종 도구와 신기술 등을 소개하는 서적으로 '적게 소비하기'를 권장했는데, 히피사상을 추종한 잡스에게 이 잡지는 성서와도 같았다.

이 잡지의 표지는 검은색을 배경으로 지구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 이미지는 아이폰의 첫화면 이미지와 유사하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사이트에는 지금도 이 지구 이미지는 홈페이지 첫 화면에 담고 있는데, 잡스의 연설에 나오는 "stay hungry,stay foolish" 문구 역시 왼편 상단에 배치돼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홀 어스 카탈로그'는 현재는 출간되지 않고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홀 어스 카탈로그'의 저작권과 자산은 기업가이자 자선가인 사무엘 데이비스가 운영하는 '뉴 홀 어스' 법인이 소유하고 있다.

[기사 출처 : http://www.vop.co.kr/A00000452905.html ]

 

 스튜어트 브랜든에 대한 다큐멘터리

 

 

from Tumblr.com

 


스티브 잡스는 많은 명연설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2005년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 연설을 최고로 꼽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연설을 마치며 했던 말인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말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대표적인 명언으로 꼽힌다. 그런데, 실제로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굴까? 이 말은 스티브 잡스가 청년 시절에 정말 소중하게 여겼다는 잡지인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의 폐간호 뒷표지에 적혀있던 말이다. 


대항문화와 사이버네틱스를 연결시킨 사나이


<홀 어스 카탈로그>를 만든 사람은 스튜어트 브랜드(Stuart Brand)이다. 그러므로, "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스튜어트 브랜드가 한 말이다. 이 잡지는 대항문화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인 1968년에 창간되었다. 당시 대항문화의 주역이었던 히피들은 '의식의 확장'과 자연으로 회귀해서 만든 코뮌을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의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 및 상품에 대한 정보를 <홀 어스 카탈로그>가 제공하였다. 특히 <홀 어스 카탈로그>의 창간호에는 1948년 출간된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서평을 실었는데, 스튜어트 브랜드는 LSD가 추구한 '의식의 확장'과 사이키델릭 음악의 '사이'의 운율, 그리고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가 가졌던 개념을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노버트 위너의 비트로 대표되는 정보과학이 네트워크와 통신 등에 의한 연결을 가지면서 디지털 세계가 확장되어 나가는 개념이 히피들의 '의식의 확장'에 대한 생각과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1938년에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의 공업도시 록퍼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동부의 최고 명문 사립학교로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도 다녔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Phillips Exeter Academy)를 졸업하고 1956년에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그의 지도교수는 1968년 인구문제, 식량문제 등으로 인류와 지구전체의 파멸가능성을 기록한 <인구폭탄(The Population Bomb)>을 출간해 주목받았던 시스템 이론학자 폴 에를리히이다. 1960년 스탠포드를 졸업한 그는 육군에 입대하는데, 군대에서 낙하산부대훈련을 받은 뒤 보병 교관이 되었다. 보병 교관을 지낸 뒤 스튜어트 브랜드는 군대 내 사진작가로 활동하였는데, 2년 뒤에 제대하고 나서도 사진에 흥미를 느껴 본격적인 사진 공부를 시작한다. 이 때 대항문화를 대표했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보헤미안 비트족 작가들과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는 미국 원주민 거류지에서 자주 방문하면서 미디어를 복합적으로 이용한 이벤트를 기획하는데, 미국 원주민과 서양인의 가치체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오타와 원주민 출신의 수학자인 로이스 제닝스(Lois Jennings)를 만나 결혼을 한다. 또한, 1962년 부터는 당시 합법이었던 LSD의 투약실험 피험자로 지원하여 LSD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 때 켄 키지(Ken Kesey)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영화화되어 더욱 유명해진 소설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집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LSD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운영했는데, 당시 첨단 미디어였던 텔레비전의 영상과 음성기술을 활용해 진행되었다. 어찌보면 그의 이런 활동도 사이키델릭 문화의 일면으로 볼 수 있는데, 정신의 확장이나 인간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에 큰 관심을 가졌고,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에도 심취하였다고 한다. 어찌보면 1960년 대에 오늘날 가장 각광받고 있는 HCI(Human Computer Interface)에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셈이다. 

이런 문화는 대항문화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데, 스튜어트 브랜드는 USCO라는 단체를 통해 전통적인 작품과 작가를 명확히 구분하는 예술방식에 저항하는 것으로 많은 참여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그러면서, 우주와 컴퓨터, 그리고 인간과 소통, 미디어 등의 통섭적인 접근을 하였는데, 우주와의 연결성에 있어서는 1966년 나사에의 '우주에서의 지구사진(속칭 블루마블 Blue Marble)'에 대한 공개운동을 주도하였다. 실제로 이 운동의 결과로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위성에서 찍은 지구사진들이 공개되기 시작했고, 이 사진들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수많은 컴퓨터의 월페이퍼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에는 "우주선 지구(spaceship earth)"라는 말로 유명한 디자인 과학자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버크민스터 풀러는 지구가 하나의 구체이고,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것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지구가 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여행하는 하나의 배라는 것을 우주선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튜어트 브랜드와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의 만남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필연일지도 모른다. 스튜어트 브랜드와 노버트 위너는 모두 생물학과 생태학을 공부했으며, 동시에 디지털 기술이 인간과 만나서 확장을 한다는 개념에 대해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마샬 맥루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하였고, LSD를 통해 인간의식 확장의 가능성을 접했다. 여기에 미국 원주민 공동체 생활에 빠져들어 코뮌의 생활도 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통섭적인 대항문화의 전도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포함한 수 많은 실리콘 밸리의 인물들이 <홀 어스 카탈로그>를 통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홀 어스 카탈로그>에는 매우 다양한 상품이나 정보 등이 나열되어 소개되었는데, 서로 일관되게 하기 보다는 완전히 다른 것들의 관계를 상상해서 연결짓는 것을 유도하는 스타일의 독특한 레이아웃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스튜어트 브랜드는 오늘날의 융합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그런 연습을 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이렇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샌프란시스코 만 인근의 예술,  과학, 기술, 저널리스트와 작가들을 연결했다. 1972년 <홀 어스 카탈로그>는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는데, 이 때부터 그의 명성은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무지 MUJI 의 DIY 사상과 홀어스 카탈로그

https://www.facebook.com/notes/muji-korea-%EC%83%9D%ED%99%9C%EC%97%B0%EA%B5%AC%EC%86%8C/%EC%B9%BC%EB%9F%BC-do-it-yourself/607185819330836?comment_id=5829769&offset=0&total_comments=1

 Do It Yourself의 약어인 DIY가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소개된 것은 1970년대입니다. 원래는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집에서 가구와 같은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의 전문 용어로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지금은 의식주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DIY, 즉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표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SNS의 선구자, 홀 어스 카탈로그

 

 1960년대는 반항의 시대였습니다. 기성 사회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 젊은이들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시대이기도 합니다. ‘카운터 컬쳐(반문화, 대항문화)’라 불리는 문화의 파도는 수많은 선구자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 중 가장 강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홀 어스 카탈로그(The whole earth catalog, 모든 지구 카탈로그)’의 출판자, 스튜어트 브랜드입니다.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그의 말을 인용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현재도 유효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청춘이기 때문에 갈구해야 하며, 무모한 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라는 브랜드의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영향력은 최근 재간된 1971년 판 ‘홀 어스 카탈로그’ 200만 부가 전부 판매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직접 발로 뛰어야만 알 수 있는 추천 상품정보나 지역 안내 등의 정보를 시민들의 투고로 만들어낸 책으로, 그 시대의 소셜 네트워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DIY는 시대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기거나, 개인 및 커뮤니티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추가되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사회를 더욱 좋게 바꾸자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에 DIY는 계속해서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